번아웃의 주범은 서운함이다.

번아웃 삼총사인 '피로, 냉소, 무기력', 번아웃은 열정을 불태운 직장인들이 받는 일종의 훈장일까?
최인철 교수's avatar
Nov 13, 2024
번아웃의 주범은 서운함이다.
 
충전과 방전.
배터리에 적용되던 두 단어가 언제부터 인간에게 적용되기 시작했는지는 확실치 않다. 그 기원은 차치하더라도 이것만큼 현대인의 삶을 잘 묘사하는 단어는 없어 보인다. 그러나 두 단어가 사람을 배터리 수준으로 격하시키는 것 같아서 전문적인 용어로는 잘 쓰지 않는다. 그보다는 ‘번아웃(Burnout)’이라는 용어가 훨씬 더 광범위하게 쓰인다. 소진(燒盡)이라고 번역되어 사용되기도 하지만, 번아웃이 주는 강렬한 인상에 비하면 역부족이다.
 
요즘 완전 방전 상태야. 재충전이 필요해.
번아웃의 삼총사는 피로, 냉소, 무기력이다. 과도한 업무로 인한 탈진과 그로 인한 만성 피로, 일과 사람에 대한 냉소적인 태도 그리고 자신의 무능함에 대한 절망. 번아웃의 심각한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일부에서는 번아웃을 훈장처럼 여긴다. 열정을 불태운 헌신적인 사람들만이 겪는 영광스러운 상처라고 해석한다. 성공과 행복을 위해 한 번은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로 여기기도 한다. 회사의 리더들은 번아웃 상태가 된 구성원을 안타까워하면서도 내심 기특하게 여긴다. 이런 왜곡된 인식들이 번아웃을 침묵의 암살자로 만들고 있다.
직장인이 가장 경계해야 할 인식은 번아웃의 책임이 전적으로 자신에게 있다는 인식이다. 번아웃은 철저하게 조직 현상이다. 번아웃은 치료를 받아야 할 개인의 병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상, 취미, 걷기, 여행, 자존감 회복 등 번아웃 극복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단골 키워드들은 번아웃이 전적으로 개인의 문제라는 인식을 준다. 번아웃을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2차 가해의 위험성을 안고 있는 것이다.
 
번아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문제’다.
번아웃의 숨겨진 본질은 섭섭함과 서운함이다. 번아웃은 과도한 업무에서 오는 극단적인 피로감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과도한 업무 자체가 번아웃의 충분조건은 아니다. 번아웃은 자신의 노력이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과 자신이 공정하고 공평하게 대접받지 못하고 있다는 인식이 있어야만 촉발된다. 그 생각들은 섭섭함과 서운함이라는 걷잡을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유발한다. 마지막 종착지는 자신에 대한 무력감이다.
과도한 업무로 지친 심신은 재충전을 통해 회복될 수 있다. 일이 힘든 건 아니라고 대부분의 번아웃 경험자들이 고백한다. 정작 힘든 건 사람이라고 털어놓는다. 섭섭함과 서운함이라는 감정을 동반하는 번아웃은 상사와 동료가 변하지 않으면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번아웃이라는 개념이 최초로 연구되기 시작한 영역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다루는 영역이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지금이야 거의 모든 사람에게 번아웃이라는 용어를 적용하지만, 역사적으로는 사회복지와 의료처럼 사람을 돌보는 휴먼 서비스 종사자들에게 적용되던 개념이다. 최선을 다해도 만족하지 않고 고마워하지 않는 고객들로 인한 마음의 소진이 번아웃의 애초 개념이었다.
이 본질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번아웃을 호소하는 구성원이 있다면 일을 줄여주거나 휴가를 주는 것도 필요하지만, 먼저 그의 마음을 보듬어주어야 한다. 공정하지 못한 평가를 개선하고 리더의 행동을 바꿔야 한다. 시스템을 바꾸지 않고 술 한 잔으로 위로하려는 전략으로는 번아웃을 막을 수 없다. 블랙아웃만 있을 뿐이다.
 
번아웃을 경험하고 있는 당사자들도 기존과는 전혀 다른 전략을 사용해야 한다.
 
번아웃을 이기는 매우 효과적인 그러나 매우 역설적인 방법은 타인에게 잘해주는 것이다. 넘치도록 베푸는 것, 그들을 친절히 대하고 존중하는 것이 자신의 번아웃을 극복하는 힘이 된다. 타인에 대한 존중과 사랑이 자신에게 존재 의미를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
 
자신이 누군가의 삶에 중요하다는 경험, 매터링(mattering)의 경험을 하는 것이야말로 내가 중요하지 않다는 자괴감(doesn’t matter), 그 불쾌하고 우울하고 섭섭한 번아웃을 이겨내는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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